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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청춘반환소송, 신천지 포교에 제동 걸 기회

이단사이비 집단 신천지의 폐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가운데, 지난해 12월 이들을 상대로 국내 첫 소송이 제기돼 관심을 모았다.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가 진행하는 '청춘반환소송'이 그것. 이에 본지는 한국사회와 교회가 이단의 실태를 바로 알고 대처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 아래, 신천지를 상대로 한 청춘반환소송에 대해 집중 보도한다. 구체적으로, ▲이번 소송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통일교 승소 사례를 시작으로 ▲소송의 구체적인 근거가 되는 신천지 포교의 문제점, ▲신천지 피해자 및 탈퇴자들의 현황과 소송의 향후 전망을 차례로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앞서 살펴봤듯이 신천지의 모략전도는 불법성이 상당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한 피해를 겪었다. 각종 헌금과 시간적 낭비도 심각한 문제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인 충격이 상당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청춘반환소송에 대한 신천지 탈퇴자들의 생각은 어떤지, 전문가들은 소송의 향후 전망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는지 살펴봤다. 전문가들은 신천지의 실체를 알게 될 경우 그 신도들이 받게 되는 충격은 마치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맞았을 때 오는 그것과 유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충격에 일시에 허물어져버릴 수 있다는 것. 신천지 피해자 상담 전문인 신현욱 목사가 지켜본 바로는 신천지 내부에서 가족들이 모두 신천지에 다니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부모와 자녀, 부부 간, 형제 간 관계에 극심한 갈등이 생기고 심지어는 파탄에까지 이르게 된다. 신천지 측에서 주변 관계를 끊으면서까지 헌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신 목사는 “신천지 조직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현실이 다 차단되고 그 안에서는 평안을 느끼고, 신천지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느낀다”며 “그러다가 자의든 타의든 어떤 계기로 인해 신천지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마주하는 현실의 벽, 수년 동안 외면하고 잊고 있었던 현실의 문제들이 일시에 몰려올 때 개개인은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이 신천지의 실체를 아는 순간, 대개의 경우 원망의 화살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향한다. 가족들과 주변 친구들이 계속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단이다’ 등 얘기를 하면서 말렸는데 왜 듣지 않고 고집을 부렸을까 자책하는 것. 신 목사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 상실감, 허탈함 등은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더 나아가서는 삶에 대한 의욕조차 잃게 만든다”며 “종교사기로 인한 피해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이유”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충격을 줄여줄 수 있는 완충제가 바로 이번 청춘반환소송과 형사소송”이라고 그 필요성을 힘주어 강조했다. ▲대학 입학 후 청춘의 시기 대부분을 신천지에서 보낸 20대 탈퇴자들을 만나봤다.ⓒ데일리굿뉴스 취재진이 만난 피해자들은 모두 20대 청년들로,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돼 신천지 포교에 속아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가까이를 흘려보낸 이들이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잃어버린 청춘의 시간에 대해 청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 명 한 명 인터뷰를 통해 청춘반환소송에 대해 들어봤는지를 질문한 뒤 소송에 참여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다. 예상과 달리 뜻밖에도 청춘반환소송을 알지 못하는 피해자가 대부분이었다. 또 소송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전원이 공감했지만, 참여 여부에 있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참여하지 않겠다고 답한 피해자들은 신천지에서 겪은 일을 그렇게까지 큰 피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고, 또 다시금 상처를 헤집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인터뷰에서 청춘반환소송에 대해 처음 들어봤다는 피해자 A씨는 우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A씨는 “누군가 한다면 당연히 응원하고 지지하겠지만 내가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A씨는 “주변에서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걱정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너무 괴롭기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며 “그 시간을 후회하거나 아깝다는 생각을 굳이 안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피해자 B씨는 신천지를 나온 뒤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청춘반환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B씨는 “사실 이런 소송에 대해 알아보고 찾아볼 수 있는 여유조차 없다”며 “이미 신천지 안에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고 다른 사람들보다 크게 뒤쳐졌다는 생각에, 지난 일을 가지고 피해보상을 받으려고 하기 보다는 뒤쳐진 만큼 더 빨리 따라잡기 위해 독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청춘반환소송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뛸 듯이 기뻤다는 피해자도 있었다. 인터뷰 대상자 중 가장 오랜 기간 신천지에서 활동했던 피해자 C씨는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은 웬만하면 신천지에서 겪은 일들을 숨기라고 하시고, 실제로 저도 혼자 있으면 자꾸 숨게 되고 감추게 된다”면서 “그런데 피해자들끼리 모이고 같이 신앙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용기가 생기고, 우리가 가만히 있으니까 당하고 이런 일이 계속 생기는 것이라고 서로를 격려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수와 피해 규모 등에 따라 수사 및 소송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데일리굿뉴스 통일교 판례가 널리 알려진 일본과 달리 국내에서는 아직 종교사기 내지는 청춘반환소송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한 건의 소송 당 탈퇴자 수십 명이 참여했던 일본 통일교 사례처럼 다수의 피해자들이 적극 참여하고 사례가 누적돼야 승소 가능성이 더욱 올라간다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 D씨는 “일단 소송을 맡은 변호사 입장에서도 가능성이 없었다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특히 형사소송의 경우는 이미 사기죄로 처벌받은 이단사이비 단체에 대한 기존 국내 판례가 존재하기 때문에 승소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많은 피해자들이 참여할수록 사건의 성패를 가른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수사기관이 진상규명에 대해 철저한 의지를 갖고 조사하는 경우와 고소·고발로 인해 마지못해 수사를 하는 경우는 조사결과에 있어서 큰 차이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D 변호사는 “다수의 피해자들이 폭로한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씨의 경우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어서 보기 드문 대대적인 수사가 이뤄졌다”며 “피해자들의 참여 여부가 수사기관의 수사 및 소송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고 강조했다. 전피연 홍연호 대표는 지난해 12월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청춘반환소송에 대한 기자회견을 한 뒤 전국에서 굉장히 많은 전화가 걸려왔다고 했다. 이는 그 동안 신천지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고 구제할 방법이 전무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홍 대표는 "이번 소송에서 승소하게 되면 전국 수만 명의 신천지 피해자들은 물론 각종 사이비 단체의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된다"며 "교계와 사회 전반적으로 종교사기 피해 대처에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신현욱 목사 역시 이번 소송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그는 “이미 피해를 겪은 분들에 대한 보상도 보상이지만, 무엇보다 신천지 포교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며 “향후 신천지로 유입되는 사람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에 이 청춘반환소송보다 더 큰 효과가 없다”고 강조했다. 신천지 피해자들은 소송 참여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번 청춘반환소송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런 소송이 가능할 만큼 신천지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길 바란다는 것. "종교가 있든 없든,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소송까지 걸 정도로 신천지가 피해를 입혔구나, 신천지라는 단체가 정말 무시무시한 곳이구나를 일반인들이 인지할 수 있을 만큼 소송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칼럼] 정의로운 사회와 스코필드 박사의 회고

저명한 수의학자이며 기독교 선교사였던 프랭크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 박사는 대한민국과 한국국민을 끝없이 사랑한 외국인이었다. 한국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한 그는 1959년 5월 초 캐나다에서 가재를 정리하고 9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국립 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잠들어 있다. 그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발이 불편해 1914년 발발한 1차 세계대전 때 전쟁에 참가하지 못했다. 마음에 빚을 지고 살아오던 중,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인 올리버 R. 에이비슨(영어: Oliver R. Avison, 어비신)의 초청으로 1916년 부인과 함께 우리나라에 왔다. 그는 먼 이국 땅 아침의 나라, 조선에서의 부름을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응했다. 주위 사람들의 온갖 만류도 그의 결심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렇게 캐나다에서의 안정적인 삶마저 포기한 채 서울에서 제2의 삶을 살았다. 그는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의 ‘石’은 그의 종교적 굳은 의지를 의미하고, ‘虎’는 호랑이, ‘弼’은 돕는다는 뜻으로 한국인을 돕겠다는 마음을 이름에까지 새기고 불어 넣었다. 당시 미국으로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윌슨의‘민족자결주의’는 동양에까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이에 고무된 동경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1919년 2월 8일 한국독립선언을 선포했다. 이 무렵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이갑성 옹의 부탁으로 스코필드 박사도 독립운동 준비에 동참하게 된다. 그가 맡은 일은 국제사정을 알려주는 일이었다. 3월 1일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후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민중들의 모습을 비롯한 시위자에 대한 일본 경찰의 폭력적인 만행을 사진으로 찍고, 글로 적어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그는 한국인 이상으로 한국인을 사랑했으며 한국독립운동에 크나큰 역할을 감당했다. 그는 3·1만세운동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영어의 몸으로 있는 유관순을 찾아가서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서 싸우고 또 싸웠다. 3·1독립선언서의 33인외에 또 다른 사람을 넣어야 한다면 단연 스코필드박사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 3·1독립선언서는 스코필드 박사와 함께 34인이라는 말을 한사람도 있다. 1958년 한국은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치고 경제는 피폐했으며 거리는 전쟁고아와 상이군인으로 가득 찬 시기였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부패를 척결해 민생을 안정시킬 것을 주문했다. 나아가 독재를 중지하고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건의했다. 이에 대한 이승만과 이기붕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해 10월 경향신문에 한국 국민의 환대에 감사하는 편지를 싣는다. 이 편지는 정의와 사랑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발전시키라는 내용이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고 민주당정권이 들어서자 그해 4월 28일자 Korean Republic에 3·1독립운동의 영웅적 정신을 계승한 학생들에 의해 부패하고 잔인한 전제정치가 종식됨을 환영하는 글을 실었다. 그는 이 글에서 “새 정부는 정의를 구현하라. 정치적인 이익에 앞서 전체 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하라. 건전하고 유능한 정부가 들어 설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한다. 구 정부에 마지못해 동조했던 사람들에 대해 복수는 절대해서는 안 된다”라고 당부했다. 다음 글은 스코필드의 아버지 프란스 스코필드가 그의 아이들에게 가훈에 가까운 교훈으로 심어 주었던 말이다. 이 말은 장성한 후 스코필드 박사의 인생관으로 자리 잡는다. “인생에는 두 길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배려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기도의 길이다. 배려의 생활은 환경의 압박에서 자라나고, 상식을 그 인도자로 삼는다. 어떤 길을 가든 예측불허의 험난함을 각오해야하며, 항시 염려를 동반자로 삼아야한다. 기도의 생활은 사랑을 힘으로, 하나님을 인도자로, 진리를 가는 길로, 하나님의 평화를 무적의 수호로 삼는다.” 그는 임종을 며칠 앞두고 병상에서 “ 한국인이여, 부정부패와 용감하게 싸우는 한국인이 되어 다오”란 말을 한국인에게 남겼다. 이 말은 그가 조국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한국인에게 보내는 그의 간절한 기도요, 마지막 유언이었다. 그는 “내가 죽거든 한국 땅 햇볕 따사로운 터에 묻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81세를 일기로 우리 대한의 땅에서 영면했다. 그의 소원대로 그의 제2고향이자 조국인 한국 땅 국립 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묻혔다. 이제 우리는 그가 살아생전 부르짖었던 “부정부패는 한국의 공적이요, 우리 사회의 병이다”란 말을 다시 새겨 볼 때이다. 그는 풍요로운 사회보다도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더 역설했다. 부정부패와 용감하게 싸우는 국민이 되라는 스코필드박사의 말이 더욱 새롭게 다가온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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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일에 힘쓰라
[디도서 3:1-3:15]
1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2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8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9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11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12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노라13  율법교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들로 부족함이 없게 하고14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 쓰기를 배우게 하라15  ○나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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